Jacqueline Mary Du Pre 재클린 뒤 프레 1945년 1월 26일~1987년 10월 19일 영국 출생 1978년 다중경화증 판정, 연주 중단 재클린 뒤프레와의 인연은 몇 년 전, 장마가 시작되던 초여름 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번개가 치며 거센 바람이 불고, 세찬 비가 쏟아져 내리는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결국 운전을 포기하고 가장자리에 차를 세웠습니다. 차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의 형체는 사라지고 오롯이 소리만 있었던 밤으로 기억합니다. 어둠으로부터 밀려드는 무서운 파도소리, 차창을 때리는 요란한 빗소리와 바람소리... 이러한 상황에서 두려움이 일지 않았다면 아마도 거짓말일 것입니다. 작은 벌레가 지나가듯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그와 반대로 비바람은 빠른 속도로 거칠어지고 있었습니다. 인적도 통행차량도 없는 어두운 도로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은 제게 고역이었습니다. 습관처럼 라디오를 돌려대다가 귀에 잡힌 음악이 콜 니드라이였습니다. 힘있고 묵직하게 현을 썰어 내리는 소리, 흡사 돌톱으로 톱질이라도 가하는 듯한 보우잉... 그것은 귀에 익은 카잘스나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가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첼로의 소리에 사로잡혀 두려움을 잊었습니다. 더불어 한겨울의 고적한 포구를 연상시키는 콜 니드라이를 여름의 폭우 속에서 듣는 다는 것은 참으로 색다르고 매혹적인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음악이 모두 끝났을 때, 비로소 이 고혹적이고 정열적인 음색을 분출해내는 첼리스트가 재클린 뒤프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재클린의 주요 곡들이 들어있는 옴니버스 앨범을 우선 소개하고 넘어가볼까 합니다. Volume one 과 two 로 발매되었고 각각은 2CD 로 되어있습니다. 1권의 첫 CD 에는 드보르작 첼로협주곡 1악장,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2번 전악장, 그리고 재클린하면 떠오르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 전악장이 들어있습니다. 모두 그녀의 남성적이고 묵직한 힘을 느끼게 해주는 연주들입니다. 두 번째 CD 에는 소품들이 들어있습니다. 시실리안느, 멘델스존의 무언가, 포레의 엘레지, 바흐의 아다지오 등 모든 곡들이 첼로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곡들입니다. 바비롤리나 남편이었던 바렌보임이 주로 지휘와 피아노를 맡았던 것들로 그녀의 열정과 음악적 영감이 음반을 통해 고스란히 가슴으로 전해집니다. 혹자들은 엘가의 첼로 협주곡에 있어서 만큼은 아직도 그녀를 따라 잡을 만한 대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합니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파블로 카잘스와 폴 토르틀리에같은 대가들에 의해 연주되어 커다란 격찬을 받았었으나 그 작품은 뒤 프레가 1962년 런던에서 두 차례 연주를 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영국의 연주자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활활 태워 만들어낸 음악 배우에는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배역에 몰입된 열정의 연기를 보여주는 피에로,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 밖으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연기를 객관화 시켜놓고 연기를 하는 노련한 조율사, 이러한 두 가지 유형의 연기에 속하는 연주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첼로음악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연주자로 유명한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를 후자에 비유할 수 있다면 아마도 재클린의 연주는 전자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연주는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 강렬한 힘과 표현, 순수하고 솔직한 열정이 돋보였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한 인간이 평생을 두고 써야 할 수명과 기를 짧은 기간에 소진해 버렸기 때문에 때 이른 죽음을 맞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열정적이었다는 것이지요. 병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항상 웃음을 간직한 낙천주의자였고, 자신감이 넘쳐 흘렀으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활달했다고도 합니다. 또한, '테크닉상의 어려움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안전하게 연주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녕 알지 못했던 연주자였다.' 라는 평을 받습니다. 무대에 설 때마다 마치 그 연주가 자신의 마지막 무대인 것처럼 모든 정열을 불살랐으며 이런 그녀의 열정은 마치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 불사르려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나를 미치게 만든다" 단명해 버린 천재, 영국이 낳은 금세기 최고의 여성 첼리스트로 불리는 비운의 예술가, 재클린 뒤프레. 자신의 연주만큼이나 열정적이고,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은 1945년, 옥스퍼드에서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으로써 시작됩니다. 재클린, 재키, 혹은 쟈크린느... 그녀의 프랑스적인 이름은 아버지의 채널 아일랜드 조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합니다. 그녀는 다섯 번째의 생일을 맞기 전부터 이미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악기소리 가운데, 특히 첼로소리를 지적하며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합니다. 그때 바로 그녀의 삶은 결정되었던 것이죠. 재클린은 네 살 무렵, 자기 키보다 큰 첼로를 선물 받고 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해 카잘스와 토르틀리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사사하면서 어린 나이에 첼로계의 흐름을 두루 섭렵할 수 있었습니다. 1957년 그녀는 그렇게도 바라던 수지아 어워드에서 수상합니다. 그리고 16세가 되던 1961년, 런던에서 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고, 65년엔 뉴욕에 데뷔하면서 이후로 세계적인 첼리스트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게 됩니다. 연주 중 현을 끊어먹을 정도로 힘에 넘쳤던 그녀의 연주에 대해 비평가들은 "그녀는 나를 미치게 만든다"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예술가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아리따운 천재에게서 신은 너무나도 일찍 모든 행복을 거둬가 버립니다.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중경화증이라는 질병이 그녀를 덮게 되는 것이죠. 그녀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피아노의 성녀라 불리는 클라라 하스킬이 떠오릅니다. 세포경화증(Sclerosis)이라는, 뼈와 근육이 붙거나 세포끼리 붙어 버리는 불치의 병으로 결국 곱추가 되어버렸고 기차에서 떨어져 생을 거두고 만 그녀와 다중 경화증으로 첼로를 놓아야 했던 재클린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습니다. 재클린은 23세 되던 해에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합니다. 가족들이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바렌보임과의 결혼, 그는 좋은 음악적 동료였을지 모르나, 좋은 남편은 분명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와의 결혼이 그녀에게 음악적 성숙과 경험을 주었으나, 바렌보임이 지휘자로서 캐리어를 쌓는 동안 협연자로 혹사당했다는 인상을 감추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에 있어 누가 누구를 더 많이 사랑했느냐는 의미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은 질문입니다만, 어쨌든 뒤 프레가 다니엘 바렌보임을, 바렌보임이 그녀를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유태인이었던 바렌보임을 따라 중동전쟁(6일 전쟁) 중이었던 이스라엘까지 날아가 이스라엘 교향악단과 협연한 사실만 하더라도 그에 대한 사랑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 수상인 벤구리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세기의 결혼식> 을 올렸던 이 음악가 부부는 영국으로 돌아온 뒤 얼마간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다중경화증이 그녀를 집어삼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1970년 무렵 그녀는 눈에 띄게 피로해 하기 시작했으며 눈이 침침해질 때가 많았고, 손가락이 저리고 차가워지면서 걸음걸이도 점점 더 볼품없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병에 걸린 뒤 프레는 차츰 증세가 악화되어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주 가끔씩 자신의 이런 증상을 남편인 바렌보임에게 털어 놓지만 그 때마다 가볍게 넘어가고 맙니다. 바렌보임은 연주자로서뿐만 아니라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그녀의 건강보다는 오로지 그녀의 연주가 필요했던 것이죠. 바렌보임의 눈에는 처절하게 무너져가는 뒤 프레의 슬픈 운명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던 것이죠. 그는 아내가 리허설시, 자주 템포를 놓치게 되자 그때마다 혹독하게 몰아 부쳤다고 합니다. 정신력이 해이해진 탓이라는 것이 바렌보임의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협연에서 템포와 호흡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만 바렌보임이 추후에 보인 행보를 본다면, 이미 그의 눈으로는 더 이상 ‘사랑’ 을 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로 인해 그녀 역시 자신이 아픈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고 일주일에 5회씩 정신분석가인 월터 조피에게 진찰을 받으러 다니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일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필연적으로 그녀의 연주에 대한 악평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나를 미치게 한다" 던 연주는 "일관성도, 논리성도 없는 연주" 라고 혹독하게 폄하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병세가 너무 악화되어 연주 중에 활을 놓쳐 버릴 지경이 되어서야 찾아간 병원에서, 그녀는 '다중경화증' 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습니다. 사실이 밝혀지자 뒤 프레는 오히려 안도의 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정신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바렌보임에 대한 뒤 프레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남편의 질책과 비난이 얼마나 혹독했으며 그로 인해 그녀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고 있었는지 엿보게 하는 에피소드라는 것입니다. 그녀에게서 재능과 행복을 앗아간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은 원인 불명의 질환으로 신경을 싸고 있는 수초라는 물질이 손상으로 인해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병입니다. 시력이상, 신경의 통증, 근력의 갑작스런 약화, 손발의 떨림, 이런 증상이 전신으로 퍼져 결국 침대에 누워 생활하다가 사망하게 되는 잔인한 질병입니다. 몇 가지 치료 방법이 있으나 아직 완치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73년, 그녀는 첼로 케이스도 혼자 열기 힘든 정도가 되었고 결국 청중들에게 야유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잃어 버린 것은 건강과 첼로 만이 아니라는 것을 뒤 프레는 곧 알게 됩니다. 사랑과 사람, 그리고 그녀가 일궈 온 삶을 송두리째 잃게 됩니다. 그녀는 점점 우울해 졌고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서 등을 돌립니다. 최후의 비참했던 연주회로부터 시작하여 두 다리, 양팔 그리고 몸 전체의 균형을 잃었고, 사물이 두 개로 보일 지경이어서 책도 읽을 수가 없었으며 전화의 다이얼 돌리는 일도, 돌아눕는 일도 더 이상 그녀에게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1975년 이후로는 눈물을 흘릴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점차 남편 바렌보임을 비롯하여 뒤 프레의 지인들이 바쁘다거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연락하는 횟수를 줄였고 차츰 아무도 찾지 않게 됩니다. 그녀는 아무도 없는 밤에는 혼자 절망과 외로움에 떨며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와달라고 조르곤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휠체어에 앉아 세월을 갉아먹던 절망의 시절,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첼로는 외로운 악기다. 다른 악기나 지휘자가 있는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첼로로 음악을 완성시키기 위해선 음악적으로 강한 유대를 가진 보조자가 필요하다. 나는 운이 좋아 다니엘을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연주하고 싶었던 곡을 거의 다 음반에 담을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연주한 엘가 협주곡을 틀어놓고 멍하게 있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며 울먹였다고 합니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 그녀의 울음 소리를 한번 상상해 봅니다. "들을 때마다 몸이 찢겨나가는 기분이 들어요. 눈물 조각처럼... 대체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그녀는 음악가가 아닌 음악의 정신 그 자체" 그럼에도 그녀는 강철 같은 의지로 마지막 삶을 불태웁니다. 첼로의 마스터 클래스를 운영하면서 예의 농담을 멈추지 않았고 이런 정신력을 가진 그녀에게 다시 매스컴들은 찬사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죽음의 문 앞으로 다가가는 중이었습니다. 결국 14년에 걸친 그녀의 투병생활은 1987년, 어느 날에 쓸쓸하게 종지부를 찍습니다. 짧은 인생을 불꽃처럼 태우고 간 재클린 뒤 프레, 그녀는 우리에게 '음악의 정신' 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음악가 이상의 무엇, 바로 음악의 정신 그 자체였다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그녀가 연주하던 다비도프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요요마에게 물림 되었고 오늘날에도 그 아름다운 선율과 그녀의 음악정신은 우리에게 생생히 살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Jacqueline_Du_Pre 힐러리와 재키 (Hilary And Jackie, 1998) - 힐러리 뒤프레와 근육마비증으로 요절한 전설적인 천재 첼리스트인 자클린 뒤프레 두 자매에 관한 얘기를 다룬 영화. 영화 OST와 동영상 파일, 그리고 중국어, 영어 자막은 어렵게 구할 수 있으나 한국어 자막은 아직 배포되지 않고 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4052 Les larmes de Jacqueline (재클린의 눈물)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 곡은 Thomas Werner가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의 악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는데 재클린의 즉음을 애도하며 이 곡에 재클린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